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 내전 (문단 편집) ==== 구심점(최고사령관) 부재 ==== 백군 측은 적군에게 대항한다는 점만 빼면 이념이나 지도자가 모두 다른 집단이었다. [[왕당파]]조차 입헌군주파와 전제정 옹호파가 섞여 있었고 여기에 공화제 지지자들도 있었다.[* [[표트르 브란겔]]의 경우 제국을 지지하긴 했지만 공화정을 수용하는 입장이었으며 블라디미르 카펠은 제국을 지지했음에도 코무치의 지휘관이 되었다.][* 이들은 내전에서 패배한 후 [[파시즘]]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일례로 제정복고 단체 믈라도로시 연합도 소련의 공작에 의해 좌경화되기 전까지는 이탈리아 파시즘의 영향을 받은 단체였다.] 즉 백군은 통일된 이념도 없었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도 거의 없었다. 볼셰비키는 이미 반혁명군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던 [[니콜라이 2세]] 일가를 모조리 학살하여 후환을 제거했고 결과적으로 백군 측의 군벌들은 스스로 우두머리가 되어서 서로 싸우기까지 했다. 심지어 백군의 한 축이었던 사회혁명당 우파는 그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코무치(제헌의회 의원 위원회)와 시베리아 임시정부가 우랄-시베리아 지역의 통제권을 두고 서로 싸우는 바람에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이 그 중재안으로 우랄 임시정부를 세우기도 하는 등 자기 편끼리도 주도권 투쟁을 벌였다. 백군의 각 부대는 부대 내부의 상하명령체계는 확실했지만 각 부대를 통합 지휘할 '''최고사령관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명목상으로는 콜차크가 최고지도자이긴 했지만 다른 지역에 명령을 내릴 방법은 전무했다. 이는 적군에게도 큰 문제긴 했지만 [[체카]]란 무자비한 정보기관의 존재,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을 모두 모은 위원회를 통해 해결했다. 전투가 끝나고 후에 명령에 불복종하면 공포를 통해서 적군계 군벌들을 통제했고 공산주의 계열 인사들은 위원회 내에서 언제든 일선 병력들에게 보낼 전략적인 명령을 결정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명령을 전달할 수단은 백군과 비슷한 수준으로 희박하긴 했으나 최소한 전략적인 명령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전략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1920년 콜차크가 체코 군단의 통행과 거래되어 처형당하자 백군의 세력은 더욱 약화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